2014년 1월 2일 목요일

박영근 시

박영근

방조제에서 바라보면 큰가리섬은 벌써 거칠게 파도에 묻히고 있다
솟구치는 너울 속에 문득 저를 통째로 버리기도 하는
바위벽 너머 짙푸른 솔숲
방조제를 넘어온 바람은
간척지 갈대숲 속에 박혀있는 몇 척의 폐선을 흔들며
인기척을 묻고
나는 물때가 사라진 옛길을 더듬는다
죽은 조개들이 떠올라 물길을 찾아 밀려온다는 고정리 찾아가는 길
파도 위를 떠돌던 바다새 한 마리
수직으로 떨어져 먹이를 낚아채는데
왜 이리 눈물겨운가
비웃지 마라
내 여기서 찾고 있는 건
수천 도요새가 머물다 간 갯벌이 아니다
솟대 위에 걸려 있는 눈먼 노랑부리저어새가 아니다
나를 찾고 싶었을 뿐
나를 눕힐 갯고랑을 찾고 싶었을 뿐
더는 어디로 돌아갈 수조차 없는 기억이 끝내 치우지 못한
게 한마리
작은 바위 하나 짊어진 채 가고 있다
온 숨을 몰아 나를 피해서

출전 시집 <저꽃이 불편하다> 2002년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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