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0일 수요일

인터뷰 1


***할머니


이대를 나와 당시 박정희 시대에 라디오 드라마 등의 효과음 넣는 일을 했음. (사운드 엔지니어? 프로듀서? ) 당시 여자가 자신밖에 없었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 하면 성우랄 했다고 오해함.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데 자신이 목소리가 좋은 것은 어릴 적부터 노래를 했기 때문
시절에는 22, 23이면 다들 결혼을 해서 이대 출신 여자들은 아주 찌질이가 아니고서는 남겨지질 않았음. 자신은 남편과 25세에 결혼을 했는데 늙은 며느리를 얻었다고 어른들이 싫어했음. 결혼식날조차 농사철이라 일이 바쁘다며 가족들이 보러 오지를 않아 자신을 무시하나 싶고 상처가 되어 마구 울었음. 새색시가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구경 나와 애들은 자신의 치마를 들추고 저고리를 들추는가 하면, 결혼하고서는 남편과 방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댁 식구가 방에 모여 3일밤을 자고서야 남편과 함께할 있었음
한참 경상도 지역에서 파마가 유행이었는데 자신은 머릿결이 아주 고운 생머리여서 동네 어르신들이 이보라, 서울 여자들은 파마도 하지 않느냐, 하심. 머릿결이 너무 고왔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백발이
대부도에는 어쩌다 들어오게 되셨냐는 질문에
지아비가 암에 걸려서 공기 좋은 집을 찾는데 그게 바로 안산이었음. 집을 줄여 가기는 힘들어서 평수를 찾는데 당시 큰평수가 귀할 때라 도무지 찾을 없어 고생을 하다 겨우겨우 군데 찾았으나 다음날 계약하러 내려갔더니 집이 나가버렸음. 다시 어렵사리 찾은 집은 오후 시가 넘으면 볕이 들지 않아 깜깜했음. 호수공원이 있는 곳으로 다시 이사를 했는데 당시 공원에 장미꽃이 큼지막하지 꽃잎이 아주 탐스러워 보기 좋았음. 남편과 매일같이 산책을 했는데 몇년 지나니 비료를 제대로 줬는지 꽃이 예전만큼 싱싱하고 아름답지가 않았음
--아들이 지겨울텐데 어머니 말씀이 너무 많으시다고 하니 다소 격앙된 톤으로 "물어봐서 대답하는 거야-"라고 하심.--
남편은 암에 걸린 이후 지금까지 생물을 먹은 적이 없음. 감염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백혈병 환자들도 절대 생물을 먹지 않고 모든 것을 익히고 데쳐서 먹음. 생물을 먹지 못하고 무청, 당근, 다섯가지 야채를 삶아 우려낸 물을 드심. 그게 오래 보관을 못해 매일같이 물을 끓였음. 몇년을 먹다보니 물려 건더기를 어찌 하지 못하다가 된장을 풀어 찌개를 하니 먹을만했음. 남편이 개고기를 먹는데 그걸 몰래 그렇게 우려서 고기는 버리고 국물을 요리해 먹도록
(끝끝내 어떻게 대부도에 오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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