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에서 이사온 할머니1: 나는 처음에 꽤나 오랫동안 따돌림 당했다. 외지에서 살기 어려워 이 곳에 와 조개를 캐려는데 아무나 캐게 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200만원인가 하는 돈을 내고서야 캘 수 있었다. 그렇게 조개를 캐면서도 얼마간은 계속 따돌림을 당했다. 외지인이 아니고서야 이 곳 사람들은 여기 얘기를 잘 안 한다. 여기 여자들은 처녀적에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애 낳고 다음날도 갯벌에 나가 일했다. 지금 몸이 아프고 그렇지만도 그렇게 산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렇게만 살아왔고 너무 당연해서 특별할 것을 몰라 얘기를 않는 것이다.
키 큰 원주민 할머니1: 철도 신호기사인 남편과 인천서 살다가 자식들이 장성하고 지아비는 명이 다하여 고향 대부도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인천에서 건너와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할머니 경우 대부도 태생, 인천에서도 살고 서울에서도 살았다. 지금은 볍씨 놓고 모심을 때고, 포도밭 등 계절이어서 대부분 할머니들은 하우스에 가서 일하고 있다. 아들 며느리들이 이곳에서 사니까, 손주들은 뭍에서 키워서 공부시키고 장가 보내고 선감도로 다시 내려온 것이다. 배가 아침 5시에 나갔다 고기 잡고 탄도로 들어온다. 꽃게 잡이를 하지만 다 팔기 때문에 자신들을 먹을 수 없다.일본정치때 처녀를 일본사람이 붙들어 간다고 해서 일찍 시집갔다. 임자 있는 사람은 안데려가고 쳐녀들은 데려간다고 했다. 옛날 결혼식은 쪽지고 쪽두리 쓰고 햇다. 현재 폐백하는 것과 같이. 경운기타고 결혼하기도 했다. 그전엔은 선감도가 섬이었다. 물이 흐르고 있어서 신혼짐을 못옮겼다. 방아머리와서 배가 안떠서 왔다갔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다 막아서 좋은것은 왓다갔다 하는 것뿐이지 좋은 것은 없다. 갯벌이 다 없어졌다. 낙지, 굴, 바지락, 까무락 등이 다 없어졌다. 바닷물이 막혀버려서....할아버지를 만난것은 중매를 통해서였다. 색시집 중매쟁이, 남자집 중매쟁이 통해서 만났다. 연애를 통해 만나면 별난 거였다.
키가 크고 떡대가 있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50년대 전쟁 당시 민방위로 동원되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막대기를 들고 휙휙, 한나, 둘, 서이, 너이, 앞으로이 갓! 뒤로이 갓! 제자리에에 섯!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옛날에는 배를 못 타게 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진 않았어도 종종 있었다. 방아머리 살던 그 집 &&이는 우리 아들 **이 덕분에 장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이는 아내가 있는데, 어느 날 어떤 젊은 처자가 우리집을 찾아와서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머니 이거 해드릴게요' 옆에서 이러면서 살갑게 굴더라. 아니 우리 **이는 색시가 있는데, 이 놈이 어디 가서 몸쓸 짓 하고 왔나 걱정을 했드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우리 **이가 배에서 만난 처자란다. 그 처자가 신발끈이 떨어져 신발 한 짝을 신을 수가 없게 되어 신발 장사하던 **이가 신발을 한 켤레 요놈 신으라고 또르르 굴려줬는데, 아 글쎄 그걸 뭐 그냥 가면 되지 신발값을 치른다고 몇 날이고 지나 다시 온 것이었단다. 근데 우리 **이가 말했는지 그 얘기를 방아머리 살던 &&엄마가 듣고서는 그 처자 배 태우지 말라고 시켰다. 처자가 배를 타러 갔다가도 배가 안 뜬다 하니, 의아해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에는 선착장 앞에 있는 &&이네 집에서 묵어 가기로 했다. 바로 그 날 밤에 &&이가 해먹었지. 그렇게 결혼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그 색시 엄마가 와서 난리를 치더라. 근데 그 집도 뭐 별 거 없었어. 애미는 알콜 중독에... 서른일곱이면 노총각인데. 색시 못 얻다가. 그 집은 우리 **이 덕에 색시 얻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옛날엔 이런 일이 흔하진 않아도 있었다.
지금 아들 낳고 잘 산다. 당사자들은 이런 얘기 안 한다.
이곳에는 인천에서 건너와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답글삭제키 큰 할머니 경우 대부도 태생, 인천에서도 살고 서울에서도 살았다. 지금은 볍씨 놓고 모심을 때고, 포도밭 등 계절이어서 대부분 할머니들은 하우스에 가서 일하고 있다. 아들 며느리들이 이곳에서 사니까, 손주들은 뭍에서 키워서 공부시키고 장가 보내고 선감도로 다시 내려온 것이다. 배가 아침 5시에 나갔다 고기 잡고 탄도로 들어온다. 꽃개 잡이를 하지만 다 팔기 때문에 자신들을 먹을 수 없다.
일본정치때 처녀를 일본사람이 붙들어 간다고 해서 일찍 시집갔다. 임자 있는 사람은 안데려가고 쳐녀들은 데려간다고 했다. 옛날 결혼식은 쪽지고 쪽두리 쓰고 햇다. 현재 폐백하는 것과 같이. 경운기타고 결혼하기도 했다. 그전엔은 선감도가 섬이었다. 물이 흐르고 있어서 신혼짐을 못옮겼다. 방아머리와서 배가 안떠서 왔다갔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다 막아서 좋은것은 왓다갔다 하는 것뿐이지 좋은 것은 없다. 갯벌이 다 없어졌다. 낙지, 굴, 바지락, 까무락 등이 다 없어졌다. 바닷물이 막혀버려서....할아버지를 만난것은 중매를 통해서였다. 색시집 중매쟁이, 남자집 중매쟁이 통해서 만났다. 연애를 통해 만나면 별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