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 서커스단은 1925년 일본인의 서커스단 직원이었던 동춘 박동수에 의해 창단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커스단.초창기의 동춘 서커스는 서양식의 공중 곡예와 신기한 마술쇼에 한국적 맛을 살린 판소리와 만담 등을 섞어서 공연을 함.
긴장과 탄성,눈물과 웃음,즐거움을 선사하던 서커스
이처럼 볼거리,먹거리가 넘쳐나는 춘향제 행사기간 동안 가장행렬,춘향뽑기 못지않게 구경꾼들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서커스 공연이 있었다. 곡예단,곡마단이라고 불렸던 서커스 공연은 당시 시골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따라서 춘향제가 열리면 동춘
서커스,대우 서커스단을 포함하여 많게는 세개이상의 서커스단이 남원 광한루 주변에서 공연을 하였다.
서커스단들은 춘향제 행사가 열리기 열흘전 부터 천막을 치고 밴드와 원숭이를 태운 선전용 스리쿼터를 몰고 남원시내와 시골을
돌아다니며 "지상 최대의 서커스 공연"이 열린다며 선전하고 다녔다. 서커스 공연장 출입구 옆에는 코끼리 한마리를 매어놓고 카우보이
차림을 한 난장이 단원들이 손님들을 부르곤 하였다.
당시 서커스 공연장
관람석은 맨땅에 가마니를 터 만든 거적이나 멍석이 깔려있었다. 서커스 공연은 아이들이 가장 보고싶어 했지만 볼거리 문화가 없었던
시절이다 보니 어른,노인들도 공연장을 많이 찾았다. 갓이나 중절모를 쓰고 담뱃대를 든 도포차림의 할아버지들부터
아저씨,아줌마,처녀총각,어린아이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겼다.
어른,아이가 뒤섞여 빼곡이 들어앉아 아슬아슬한 공중그네타기,장대 외줄타기가 펼쳐지면 손에 땀을 쥐었고 접시 돌리기,통굴리기,외바퀴
자전거타기,난장이 불쇼가 이어지면 탄성을 질렀다. 장난스런 원숭이 묘기가 나오면 배꼽을 잡기도 하였다. 긴장과 탄성과 웃음뒤에
신파극이 공연되면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 막간을 이용하여 곡마단 가수가 '동백아가씨'를 열창하고 끝나면 반드시 펼쳐지는 장면에서
시골노인 관객들은 창황망조하여 어찌할줄 모르게 된다.
다름아닌 발레공연이다. 당시 서커스단에는 묘령의 아가씨 단원 3~5명으로 구성된 발레단이 있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공연이었지만
젖가슴만 살짝 가리고 우산을 편듯한 바짝들려진 짧은 둥글납작 발레치마에 아랫도리를 훤히 드러낸채 하얀 삼각팬티만 입은 발레단이
무대 우측에서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양팔을 앞으로 모아 옆으로 쩍벌리는 모습을 반복하며 옆걸음으로 종종대며 무대중앙으로 나와 발을
앞으로 쭉쭉 올리는 발레춤을 추노라면 관람석은 일대 소란이 일어난다.
눈을 퉁방울처럼 뜬채 발레 아가씨들의 몸매를 감상하며 마른침을 삼키거나 휘파람을 불어대는 젊은이들과 달리 갓을 쓴 노인들은
도포자락으로 눈을 가리는가 하면 중절모를 쓴 중노인들은 시선을 둘곳을 찾지 못하고 허둥댄다. 그러다 결국 노여운 질책성 목소리를
터트리고 만다 .
갓을 쓴 노인 한사람이 손에 든 담뱃대로 무대위 발레단을 가리키며 "허어 저 가시내들이 옷을 입은거여,걸친것이여"하며 연신
삿대질을 하며 장탄식을 터트린다.그러면 옆에 같이온 노인도 참을 수 없다는듯 "꾀를 홀랑 벗었그만 그려, 세상 말세가 다됐어"하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자 조금 나이가 적어 보이는 낡은 잠바를 걸친 중절모 쓴 중노인이 "삼각 빤스는 입었으니께 홀랑 벗은건 아니구먼요" 중노인의
말에 삿대질하던 갓쓴 노인이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빤스를 입은게 저 모양인가. 뉘집 딸년인지 모르것지만 백주대낮에 남정네들
앞에서 앞에서 가랭이 벌리고 다리 몽댕이를 들었다 놨다 저게 무슨짓이여, 에미애비가 저런 딸년을 그냥 놔둔단 말여...."
친구노인도 목소리를 높이기는 마찬가지 "남여칠세부동석인데, 가시내가 홀딱벗고 토깽이(토끼)처럼 뛴당가, 세상에 저런 빌어 처먹을
놈의 요상한 춤도 다 있구먼 딸년 낳아서 저런 요사스런짓 할것 같으면 아예 낳자마자 땅에 보독시레서(내동댕이쳐) 죽여야 혀"
하며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눈을 흘낏거리며 볼것은 다본다.
2007년 현재
대한민국내에서의 유일한 서커스단이기도 하다. 2009년 계속되는 재정난과 서커스가 갈수록 인기를 잃고 사양화되자 청량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었다.
“그랬지. 아니타니 기노시타니하는 곡마단이 서울에 올 때면 얼마나 화려했는가. 파고다 공원 옆은 단골장소였지. 규모도 대단했고.
만주 공연을 가면 또 어땠나. 남부여 대해서 이불보따리에 바가지 하나 올려놓고 고국산천을 떠난 사람들이 공연 끝나면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고향소식을 묻지 않던가.”
- 한수산 부초(‘浮草)‘ 중에서
늙은 창부처럼 몰락해버린 서커스…. 천막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어디엘 가도 전깃불 밑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세상은
변해갔지만, 가설무대는 공연장소를 구하기마저 어려워져 변두리의 벽돌공장 부근이나 김장시장이 열리는 시장 옆 공터에서 막을 올리며
천막무대는 늙은 창부처럼 몰락해갔다. 화장을 해도 주름살을 가리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창부의 얼굴처럼, 세월은 곡예단의 얼굴을 밟고
지나갔던 것이다.
- 한수산 ‘부초(浮草)’ 중에서
그러나, 이에 동춘서커스단을 살리자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고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2009년 12월 16일 문화관광부가 전문예술단체로 등록되어, 기부금을 공개 모금할 수 있는 지정 기부금 단체가 되며 다시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뉴홍길동
http://tvpot.daum.net/v/v80c4qUfUppffTlddyq8y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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