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1일 화요일

노인정 3

8*세 할머니 (1930년대 생)

우리야 그 시대에 어렵게 살았지. 연애는 무슨 연애야, 우덜은 얼굴도 모르고 가기싫은데 시집가야한다니까 그냥 간거지 들. 사진도 없었어. 그냥 시집 오자마자 일이었지. 잠을 잘 시간도 없어. 새벽에 일어나서 아궁이 때고 밥 허고 개울가 가서 빨래 하고. 사람이 많아서 개울가에 자리도 없었어. 겨울에는 얼음물에 비누도 잿물 받아서 만들어 쓰고. 방망이질 하고. 인두 하고. 양말은 뭐 있었나. 버선 하나에. 짚새기신에. 고무신 한 번 못 신어보고 죽은 사람들도 많어. 다 기워 입고. 부잣집에서는 나무로 신을 만들어 신었지. 천을 사 오길 어떻게 사와. 집에서 다들 목화 심어서 목화에서 실 뽑아서 베틀에다가 천 만들어 옷 해입었지. 무슨 시간이 있어. 일이래면 질렸어. 남편은 바깥일하지. 돈 버는 일. 여긴 바닷가니까 뱃일 하거나. 저 안쪽에는 바다일 도 없어. 나무 해오고 그러지. 남편은 보기도 힘들어. 남편 자고 있으면 그 옆에 슬그머니 들어가 누워 자고 그랬지. 밥도 지어 먹기 힘들어서 죽이나 먹고, 여자들은 부뚜막에 앉아서 먹고 그랬어. 가끔 애들이 와서 왜 그렇게 사셨어요, 왜 그런 것만 드셨어요 그러는데 왜긴 왜야, 그 땐 그렇게 먹을 것도 없고 그렇게 살았어. 라면, 국수, 그런 게 어디가 있어. 시어머니한테 매맞고 그러고 살았어. 생각도 하기 싫어.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 지금은 정말 편한 세상이여.
취미? 좋아하는거? 글쎄 그런게 어딨어, 우리야 그냥 이렇게 죽을날만 보며 사는거지...

7*세 할머니. (1940년대생)

매느리하고도 잠깐 살았는데 편치가 않어. 어떻게 생각헐지 불편하고 그러니까 말도 함부로 못하겄고. 그냥 혼자 사는 게 활동적이고 좋아. 가끔씩 와야 반찬도 해다 주고 외려 잘 해주고 그러는 거지. 시집살이가 없었지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북에서 내려와서 시어머니가 없었지. 시아주버님이 계셨는데 몸이 편찮애서 내가 똥 다 치우고 그러면서 요만한 단칸방에 우리가 다 모여 살았어. 말도 못허고 웃지도 못허고 그렇게 살았어. 말을 못하고 사니까 음식도 안 내려가고 체증이 생기고 그랬어. 나는 자식이 다섯이야. 애들은 다 잘해, 복이지 뭐.
무릎이 아파 요새. 얼마 전에는 밥이 안 넘어가고 그래서15키로가 빠졌어. 밥 좀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어 지금. 우유에 밥을 말아먹고 그러니 3키로가 다시 쪘어. 죽진 않을란가봐. 내가 얘기 하나 해 줄까. 우리 큰 딸이 원래 말이 적어. 근데 전에 같이 김장을 하다가 얘가 갑자기 우는 거야. 엄마, 엄마가 이렇게 늙을 지 몰랐어. 이러면서 우는 거야. 내가 눈물이 다 나네 지금. (눈물을 훔치심) 그러니까 우리 둘째가, 둘째는 말이 많고 그러거든. 아이고 언니가 철이 들었나보다고. 애들이 인저 내가 죽겄지 아는 거야. 가끔씩 집에서 말 안 하고 혼자 앉아 있고 그러다보면 허망하고 그래. 인제 내가 할 일도 없고 갈 때가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가 싶어서.
춤 춰볼까. 그냥 덩실덩실 이렇게이렇게 추면 되지 안 그래?
(일어서서 두 팔을 휘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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