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83년도 시화방조제 계획 중 보상문제:
1. 어업보상: 변호사 위임
2. 맨손 어업: 면허 없이 어획고를 올리는 것. 대부분 사람들이 해당.
3. 생계 보상: 개인별 생계 (농기계, 농사 등)
동네에 몇년 이상 거주하였는지, 분가의 여부에 따라 등급 나누어 보상.
복잡한 관계이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음. 아저씨 친척분 외부에서 돈을 먹었다고 흉패한 소문이 돌아 자살.
-> 이것이 공동체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줌
아저씨는 외부에서 살다 다시 대부도로 왔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써 시선을 유지하기 때문에 고향애가 더 강하다고 하심.
보상법: 6년 보상법 (어획고 올리는 양 x 6년치) 보상금
수자원이 이것에 이의 제기해서 3년치를 환태 -시골 사람은 무지해서 더 심함
-> 이것에 반발해
1.수자원 건물 점거- 여기서 대의 명분 만든 사람이 지금 다 관리에서 한자리씩 하고 있음
2.시위 (여의도) 그러나 참여하시지 않음음
3. 시화호 방조제 부술 거라고 포크레인 대동해 시위- 보상대신 토지로 (대토) 위해서 그러나 참여 안하심
이러한 시위는 다들 일머리가 없음/ 소경인 리더들은 일머리 제로.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대부도에서 공동체가 형성 안되는 이유: 소경 리더들 + 리더에 대한 믿음 없음 + 리더들의 정치적 실패 반복. 보상법 축소의 판례를 남긴 것이 억울 하다- 새만금 등 타 섬지역 보상문제에 영향.
갯벌가치 평가가 저하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갯벌이 논농사보다 9배의 가치가 있다.
센놈보다 질긴놈이 이긴다.
습관을 바꾸는것보다 새로운것을 하믄것이 더 어렵다.
30% 정도 되던 변호사 수임료가 지금은 바뀌었다.
내가 뒷말을 듣더라도 해야할 건 해야 바뀔수 있는 빌미가 제공된다.
조력발전소나 풍력 발전소 다 필요 없다. 저것이 자본 가치가있었으면 기업에서 달려들지 국가가 가가관여하지 않는다. 항상 희생양은 시골이고 국가권력은 국민 이익보다 우선이다.
*시화호를 통한 안좋은 변화
1. 공동체 깨짐 (마을 구주 변화)
2. 수익구조 변화 (어업-> 밭농사, 포도농사)
3. 힐링(행복지수 저하) - 지가상승과 교통 원활이 행복지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일을 하게하는 것이 행복이다.
10년만 기다리면 되는데( 10년만 기다리면 다리가 건설되었을 것인데) 평생 행복이 떠났다.
만약 방조제가 안 세워졌다면 그리고 다리가 대신 세워졌다면 어덯게 변하게 되었을까?
교통시설은 어떻게든 발전될 것이다. 방조제가 세워진 이유는 외국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과 중장비들이 대거 철수해야 했고, 우리나라 땅 안에서 그들을 해결 해야했다. 그래서 세운 것이 시화 방조제 마스터 플랜이다.
왜 이런 방조제에 대한 저항이 없었나? - 시골사람들은 국가말에 복종해야하는 것으로 배웠다. 아래파워가 있어야 위에파워가 생긴다.
새마을 운동 역시 나쁜 점은 다 가려지고 긍정적 평가만 남아있다.
시화호 생겨서 섞은 물이 고여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자신은 그것이 안타까워 대부도 홍보를 위해 6개도 사진 순회전을 열게 된다.
“대부도는 깨끗하다. 대부도로 놀러오세요.”
카리스마있고 예쁜 추미애의원이 그때 초선이었는데 전화를 해서 상의를 하니 잘 들어주어서 지금까지도 좋아한다.
*탄도와 포장마차
포장마차가 불법이었는데 합법화 시키면서 국가가 탄도에 횟집 건물들을 짓고 포장마차 운영자들을 그 건물에 세들게 한다. 세와 세금이 너무 과중하여 왜 포장마차를 버리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어촌스럽고 시골스러운게 대부도의 자산인데 그 건물이 그렇다고 도시스럽지도 않다.
대부도가 강남이었으면 이렇게 못한다.
다수결도 중요하지만 한사람의 생각도 중요하다.
*자신은 젊었을 때 열우물 중 잘 나오는 것만 더 파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것 저것 모든 일을 다 해보았다. 부동산, 포도장사, 모타보트, 학원, 가스가게 , 공장 운영 등
-고마운 가스
- 방아머리에서 횟집 운영 (1호 허가 받음: 상호 주말여행): 땅을 빌려 그곳에 2층짜리 건물을 지음 호롱불을 밝혀 밤에 보면 근사했음. 자신이 대부도에서 제일 처음으로 네온을 들여온 사람일 것임.
-유원지 장사: 모타보트운영해 수상스키 타게 해줌 (1달 벌어 1년 먹을 수 잇음)
불법임. 그러나 유람선 또한 불법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계속 모타보트 운영.
나중에 모타보트로 땅 소개(부동산)를 하기도 함
-학원은 학원차(그당시 거의 차가 없음 )를 운영하여 120명 수강생이 있음. 토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음. 아이들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 . 주 5일제가 나중에 합법화 됨
차가 있었기에 보상금 받은 사람들이 술먹으러 갈때 차로 태워 주고 돈받고,
외부에서 사람들이 놀러오면 대부도 구경시켜주는 차로 이용해 돈받고,
사람이 죽거나 아프면 차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포도농사 :
섬이었을때 포도농사 짓는데가 세네집이었는데 연육되며 확 퍼졌다.
(원래는 주로 굴을 팔았다. 바지락은 무게가 나가서 많이팔지 않음)
친구네가 포도농사를 하여서 겨울에는 신문지를 잔뜩 사들고 와서 포도 봉지를 만들고, 여름이면 원두막에서 포도서리하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하면 그 집에서 포도를 나우어 주었는데 그 포도를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섬밖으로 나가 젓갈로 바꾸어 오면 그 젓갈을 사강시장으로 가져가 돼지고기로 바꾸 오셨다. 그날 밤 우리들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자신이 직접 포도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농사를 하면 수확하여 그것을 차로 싣고 포도 경매하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방아머리에서 입찰하는데 모든 포도박스를 실은 차들이 피난민 행렬처럼 몇백미터를 서 있었다. 입찰은 공정하지 않다. 5명 정도의 움직이 는 손들이 있어서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가격은 폭락한다. 자신은 농협또한 믿지 않는다. 농협은 수수료 따먹기에 급급하여 포도 한박스를 3000원에 버리고 온다. 그들은 얼마에 포도를 판던 간에 일정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손해가 없지만 포도농사꾼들은 막심한 손해다 . 그 한박스를 포도즙으로 팔면 7000원 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영등포 노량진 직거래장을 뚫어서 이삿짐차를 고용하여 동네 주민들 포도를 싣고 직접 갔다. 한 차에 600 박스가 정확히 실린다. (한박스에 15000원)
하루는 노량진에서 5명의 손의 노략으로 포도 한박스 가격이 7000원 정도가 떨어졌다. 자신은 영등포에 전화를 걸어 모든 포도를 그쪽으로 배송했다.
대부포도는 그당시 알아주는 포도였기 때문에 백화점 납품시 대부 포도가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졌다. 대부포도가 유명해 지자 가까운 화성에 포도 농사가 펴지면서 송산포도가 등장하였다. 송산포도는 축산 농사가 많아 거름을 이용할 수 잇고 농사를 거대규모로 하지 않아 요즘은 소안포도가 더 유명해 진다.
-포도즙: 보통 기계는 2시간 30분이 걸려 즙이 나오는데 자신은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보일거 기계를 구입하여 개조하여 1시간 30분 만에 즙을 만듬. 자신은 기계작동에 매우 능수 능란 하였다. 포도가 일정한 것이 아니라 당도도 다르고 익은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포도의 상태에 따라 온도조절과 시간조절이 필요한 고난위도 작업이다. 그러나 열이 높아 터지거나 쉬는 경우가 생겼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열을 이용해 즙을 만드는 것이 잘못됨을 깨달았다.
-대부도포도 vs 송산포도
송산포도 -축산농가가 많아서 퇴비가 좋다
농산물은 타이밍이다 희소가치가 있어야 제값을 받는다.
종자전쟁-요새는 유기농 뿐만 아니라 유전자조작이 안된 농작물이냐를 본다.
선감도
해방후 선감학원 일제강점기보다 더 못되개했다-위령비
아 선감도 -8뷰작다큐
난 국가권력을안믿는다니까.
국가 존속의 이유는 국민에의해 생긴다
삼청교육대
회사망함
고통을 분담하면 배가된다
힘든얘기 안하신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것이다
여자
여자의 아름다움은 자신감과 당당함이다
당당함과뻔뻔함과 자신감
죽음
죽었다 - 옛날사람이 되었다
만장기- 서글프다
이웃이 약목고 죽으려 하다가 5년후 죽었다
악상(급사,돌발사) 과 호상
공동체가 깨지면서 인간의 정관계가 없어진다
대부포도의 미래
대부포도 생산량이많아지면서 품질관리가 안됐다.
대부도 농사잘짓는사람이 주변교육안시킴
우리라는 개념
교회벽이 너무높다. 우리라는 개념이 타인을 소외시킨다
단지화가 안되어서 10년안에 포도도 사양길이다
김화정 대부도 포도아가씨-2000원
백중사리 갯벌체험한마당 - 물이 가장
군 관 민
민 관 군
2.시위 (여의도) 그러나 참여하시지 않음음
3. 시화호 방조제 부술 거라고 포크레인 대동해 시위- 보상대신 토지로 (대토) 위해서 그러나 참여 안하심
이러한 시위는 다들 일머리가 없음/ 소경인 리더들은 일머리 제로.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대부도에서 공동체가 형성 안되는 이유: 소경 리더들 + 리더에 대한 믿음 없음 + 리더들의 정치적 실패 반복. 보상법 축소의 판례를 남긴 것이 억울 하다- 새만금 등 타 섬지역 보상문제에 영향.
갯벌가치 평가가 저하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갯벌이 논농사보다 9배의 가치가 있다.
센놈보다 질긴놈이 이긴다.
습관을 바꾸는것보다 새로운것을 하믄것이 더 어렵다.
30% 정도 되던 변호사 수임료가 지금은 바뀌었다.
내가 뒷말을 듣더라도 해야할 건 해야 바뀔수 있는 빌미가 제공된다.
조력발전소나 풍력 발전소 다 필요 없다. 저것이 자본 가치가있었으면 기업에서 달려들지 국가가 가가관여하지 않는다. 항상 희생양은 시골이고 국가권력은 국민 이익보다 우선이다.
*시화호를 통한 안좋은 변화
1. 공동체 깨짐 (마을 구주 변화)
2. 수익구조 변화 (어업-> 밭농사, 포도농사)
3. 힐링(행복지수 저하) - 지가상승과 교통 원활이 행복지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일을 하게하는 것이 행복이다.
10년만 기다리면 되는데( 10년만 기다리면 다리가 건설되었을 것인데) 평생 행복이 떠났다.
만약 방조제가 안 세워졌다면 그리고 다리가 대신 세워졌다면 어덯게 변하게 되었을까?
교통시설은 어떻게든 발전될 것이다. 방조제가 세워진 이유는 외국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과 중장비들이 대거 철수해야 했고, 우리나라 땅 안에서 그들을 해결 해야했다. 그래서 세운 것이 시화 방조제 마스터 플랜이다.
왜 이런 방조제에 대한 저항이 없었나? - 시골사람들은 국가말에 복종해야하는 것으로 배웠다. 아래파워가 있어야 위에파워가 생긴다.
새마을 운동 역시 나쁜 점은 다 가려지고 긍정적 평가만 남아있다.
시화호 생겨서 섞은 물이 고여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자신은 그것이 안타까워 대부도 홍보를 위해 6개도 사진 순회전을 열게 된다.
“대부도는 깨끗하다. 대부도로 놀러오세요.”
카리스마있고 예쁜 추미애의원이 그때 초선이었는데 전화를 해서 상의를 하니 잘 들어주어서 지금까지도 좋아한다.
*탄도와 포장마차
포장마차가 불법이었는데 합법화 시키면서 국가가 탄도에 횟집 건물들을 짓고 포장마차 운영자들을 그 건물에 세들게 한다. 세와 세금이 너무 과중하여 왜 포장마차를 버리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어촌스럽고 시골스러운게 대부도의 자산인데 그 건물이 그렇다고 도시스럽지도 않다.
대부도가 강남이었으면 이렇게 못한다.
다수결도 중요하지만 한사람의 생각도 중요하다.
*자신은 젊었을 때 열우물 중 잘 나오는 것만 더 파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것 저것 모든 일을 다 해보았다. 부동산, 포도장사, 모타보트, 학원, 가스가게 , 공장 운영 등
-고마운 가스
- 방아머리에서 횟집 운영 (1호 허가 받음: 상호 주말여행): 땅을 빌려 그곳에 2층짜리 건물을 지음 호롱불을 밝혀 밤에 보면 근사했음. 자신이 대부도에서 제일 처음으로 네온을 들여온 사람일 것임.
-유원지 장사: 모타보트운영해 수상스키 타게 해줌 (1달 벌어 1년 먹을 수 잇음)
불법임. 그러나 유람선 또한 불법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계속 모타보트 운영.
나중에 모타보트로 땅 소개(부동산)를 하기도 함
-학원은 학원차(그당시 거의 차가 없음 )를 운영하여 120명 수강생이 있음. 토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음. 아이들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 . 주 5일제가 나중에 합법화 됨
차가 있었기에 보상금 받은 사람들이 술먹으러 갈때 차로 태워 주고 돈받고,
외부에서 사람들이 놀러오면 대부도 구경시켜주는 차로 이용해 돈받고,
사람이 죽거나 아프면 차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포도농사 :
섬이었을때 포도농사 짓는데가 세네집이었는데 연육되며 확 퍼졌다.
(원래는 주로 굴을 팔았다. 바지락은 무게가 나가서 많이팔지 않음)
친구네가 포도농사를 하여서 겨울에는 신문지를 잔뜩 사들고 와서 포도 봉지를 만들고, 여름이면 원두막에서 포도서리하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하면 그 집에서 포도를 나우어 주었는데 그 포도를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섬밖으로 나가 젓갈로 바꾸어 오면 그 젓갈을 사강시장으로 가져가 돼지고기로 바꾸 오셨다. 그날 밤 우리들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자신이 직접 포도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농사를 하면 수확하여 그것을 차로 싣고 포도 경매하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방아머리에서 입찰하는데 모든 포도박스를 실은 차들이 피난민 행렬처럼 몇백미터를 서 있었다. 입찰은 공정하지 않다. 5명 정도의 움직이 는 손들이 있어서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가격은 폭락한다. 자신은 농협또한 믿지 않는다. 농협은 수수료 따먹기에 급급하여 포도 한박스를 3000원에 버리고 온다. 그들은 얼마에 포도를 판던 간에 일정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손해가 없지만 포도농사꾼들은 막심한 손해다 . 그 한박스를 포도즙으로 팔면 7000원 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영등포 노량진 직거래장을 뚫어서 이삿짐차를 고용하여 동네 주민들 포도를 싣고 직접 갔다. 한 차에 600 박스가 정확히 실린다. (한박스에 15000원)
하루는 노량진에서 5명의 손의 노략으로 포도 한박스 가격이 7000원 정도가 떨어졌다. 자신은 영등포에 전화를 걸어 모든 포도를 그쪽으로 배송했다.
대부포도는 그당시 알아주는 포도였기 때문에 백화점 납품시 대부 포도가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졌다. 대부포도가 유명해 지자 가까운 화성에 포도 농사가 펴지면서 송산포도가 등장하였다. 송산포도는 축산 농사가 많아 거름을 이용할 수 잇고 농사를 거대규모로 하지 않아 요즘은 소안포도가 더 유명해 진다.
-포도즙: 보통 기계는 2시간 30분이 걸려 즙이 나오는데 자신은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보일거 기계를 구입하여 개조하여 1시간 30분 만에 즙을 만듬. 자신은 기계작동에 매우 능수 능란 하였다. 포도가 일정한 것이 아니라 당도도 다르고 익은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포도의 상태에 따라 온도조절과 시간조절이 필요한 고난위도 작업이다. 그러나 열이 높아 터지거나 쉬는 경우가 생겼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열을 이용해 즙을 만드는 것이 잘못됨을 깨달았다.
-대부도포도 vs 송산포도
송산포도 -축산농가가 많아서 퇴비가 좋다
농산물은 타이밍이다 희소가치가 있어야 제값을 받는다.
종자전쟁-요새는 유기농 뿐만 아니라 유전자조작이 안된 농작물이냐를 본다.
선감도
해방후 선감학원 일제강점기보다 더 못되개했다-위령비
아 선감도 -8뷰작다큐
난 국가권력을안믿는다니까.
국가 존속의 이유는 국민에의해 생긴다
삼청교육대
회사망함
고통을 분담하면 배가된다
힘든얘기 안하신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것이다
여자
여자의 아름다움은 자신감과 당당함이다
당당함과뻔뻔함과 자신감
죽음
죽었다 - 옛날사람이 되었다
만장기- 서글프다
이웃이 약목고 죽으려 하다가 5년후 죽었다
악상(급사,돌발사) 과 호상
공동체가 깨지면서 인간의 정관계가 없어진다
대부포도의 미래
대부포도 생산량이많아지면서 품질관리가 안됐다.
대부도 농사잘짓는사람이 주변교육안시킴
우리라는 개념
교회벽이 너무높다. 우리라는 개념이 타인을 소외시킨다
단지화가 안되어서 10년안에 포도도 사양길이다
김화정 대부도 포도아가씨-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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