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사업의 다목적성과 정책진화:
시화호 개발 사업에서 조정의 부재로부터 협의기구의 내재화까지
이종원(가톨릭대), 홍성만(안양대), 임도빈(서울대)
Ⅰ. 서론
시화호 방조제 조성을 시작한 시화지구사업은 1984년 중동건설 유휴장비활용을 목적으로 정부가 시화지구개발을 주도하였으나 초기 계획수립의 문제를 비롯하여 사업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수질오염문제의 발생,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소재의 문제, 조정의 결여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문제점을 야기함으로써, 사회적 정책적 관심대상으로 부상되었던, 그래서 정책실패사례로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정책사례였다. 다음과 같은 국회 건설교통상임위원회 회의록 내용은 이렇게 볼 수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1억8,000만t의 수자원을 확보하겠다며 시작한 시화호 담수화계획은 방조제 건설비 6,220억원과 하수처리시설비 2,079억원 등 총 8,300억원을 날리고 썩은 호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시화호 담수화계획의 백지화는 강원도 영월 동강댐 백지화와 함께 전형적인 정책실패의 사례로서 우리나라 건설행정의 현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제218회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회의록 중에서(박인배의원의 발언), 2001.2.19).
이처럼 시화호를 담수화함으로써 이 일대를 개발하려던 시화지구 개발의 중심에 있었던 시화호는 사업추진과정에서 수질오염으로 인해 담수화계획이 포기되는 등 엄청난 예산 및 행정력 낭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시화호개발을 통해서 농지조성을 기대하며 출발했던 사업은 정책환경이 바뀌고 정책추진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단기적으로 정책실패를 거듭하였고, 이로 인해 전형적인 정책실패 사례로서 정책추진기관들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가 정책실패를 논의할 때 그 시점을 어디까지(단기, 중기, 장기)포함시켜 논의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사업이나 정책사례를 바라보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단기적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적어도 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책연구의 측면에서 볼 때 시화호개발사례는 단순히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이 점이 다른 연구와 차별되는 본 연구가 지닌 문제의식이다. 즉, 시화호개발사례에서는 다양한 문제의 발생과 증폭으로 인해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역주민, 지역시민단체 등 이해당사자들의 불만의 요동치는 혼돈을 경험하고, 비로소 주요 정책행위자 및 이해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문제해결기제를 형성하며 획기적인 정책개선의 성과가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이 개발과 보존문제가 혼합되어 있는 풀기 어려운 정책에서 어떻게 정책이 진화해 나갈 수 있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대상사례인 것이다.
특히 시화호개발사례에서 초기의 정책목표는 정책 환경이 변화하면서 다목적화 되었고, 이 과정에서 더 큰 혼란을 겪고 난 후 정책행위자가 공동으로 문제해결기구를 내재화함으로써 정책개선을 이루어나갈 수가 있었다. 처음에 방조제를 쌓고자 한 것은 농지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후 정부부처 간 협의를 통해 농지조성과 관개개선을 통한 용수확보뿐만 아니라 공단조성을 통한 도시개발에도 큰 비중을 두게 되는 등 다목적을 가진 사업이었다. 목표의 추가라는 것이 정책개선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측면에서도 연구가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인식을 토대로 본 연구에서는 시화호개발의 시작부터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여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대기개선로드맵에 합의하거나 수질개선로드맵에 합의하는 등 어떻게 정책개선을 이루어나갔는지 정책개선의 과정을 정책진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 시화호 개발사업의 추진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정책진화의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사례분석을 위해 국내외의 문헌자료와 관계자와의 면담자료를 활용하였으며, 구체적인 분석은 1) 정책사례를 정책진화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기존이론의 통합을 모색하여 이론적 모형을 제시하고, 2) 정책전개과정을 기술하고, 3) 정책진화과정을 살펴보는 구성을 취할 것이다.
Ⅱ. 이론적 배경 및 분석모형 (Model of Creative Adoption through discursive learning under Garbage Can)
이러한 오늘날의 수많은 정책이 그러하듯 대규모의 국가정책은 엄청난 현실적, 잠재적 불확실성(uncertainty)과 혼돈(chaos) 상황 속에서 기획되고 추진된다. 사실 국가정책은 본원적 불확실성(intrinsic uncertainty)속에서 정부당국자의 제약조건하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책 그 자체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탐색적(heuristic)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지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불확실성과 혼돈상황이 엄청난 행정적,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그 만큼 주의 깊게 추진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기관의 이해, 대안의 부재, 선거공약, 시기적 촉박함, 재원조달의 어려움 등 많은 제약요건이 상존함에도 행정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정책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Thompson(1967)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원천과 관련해서 정책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상황적(contingency) 불확실성, 정책문제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상호의존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 정책문제에서 원인과 결과간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지식의 결여에서 발생하는 일반적 불확실성의 세 가지의 종류의 불확실성을 구분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다루는 시화호 및 시화지구 정책개발사례는 사실상 위의 3가지 불확실성이 중첩되어 있는 대단히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의 집합체라고 판단된다. 시화호 및 시화지구 개발사례는 그야말로 온갖 문제들이 중복되어 있으며, 통상적인 다른 정책연구들과 달리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수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함으로써 발생되는 책임소재의 모호성과 갈등과 조정의 문제들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책이론들이 경합하는 일종의“정책문제와 설명이론의 종합병동” 모델로 간주될 수 있다. 정책자체의 복잡성, 모호성에서 발생하는 예측능력의 한계, 그에 따른 오차발생과 오차수정의 문제, 책임기관의 모호성 및 조정기제의 부재 문제(이원희, 1998), 또한 오랜 정책시행과정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롭게 부가되거나 부각되는 문제의 발생과 추가, 또한 그에 따른 정책오차의 발생과 재조정의 문제, 즉 복잡한 문제의 정의(definition)에 따르는 문제, 문제해결 방식의 합의 등 수 많은 이론적 요소를 담고 있다.
시화호 및 시화지구개발과 같이 장기간에 걸친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정책개발사례는 우리가 정책이론모형으로 활용하고 있는 정책문제의 성격에 관한 불확실성과 정책 문제정의(problem definition)에 관한이론, 예측능력 및 시간에 따른 오차발생에 관련된 시차(time lag)이론(정정길, 2002), 쓰레기통(garbage can) 모형(Cohen, March, and Olsen, 1972), 혼돈(chaos)이론(사득환, 2003),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이론(김도훈, 2003),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의 이론(최흥석 외, 2004)과 정책네트워크(policy network)이론(박보식, 2003), 갈등과 인식의 해결과정에 있어서 담론이론 및 거버넌스의 이론(이종원, 2002; 홍성만, 2005; 이은구 외, 2003), 정책진화(policy evolution)의 이론 등 여러 이론들이 모두 부분적으로 차용, 설명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화호 및 시화지구 개발의 전체과정과 내용을 포섭하면서 정책개발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나 이론적 입장은 현재 제시되어 있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이 연구에서는 시화호 및 시화지구 개발의 여러단계의 내용을 감안하고 그 동안 부분적으로 연구논문에서 활용된 여러 이론과 모델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새로운 모델의 개발에 있어서 본 연구자들은 시화호 및 시화지구 개발에 있어서의 정책사례의 전개과정을 5단계를 나누고 그것이 어떻게 진화되어 갔는지를 다룬다. 이 전체과정을 포괄하는 설명모델로서 이 연구에서는 새로이 CADL (CADL: Creative Adoption through Discursive Learning under Garbage Can) 모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CADL 모형은 즉 지극히 혼란스럽고 정돈 안된 쓰레기통 속과 같은 불확실한 정책환경 속에서 담론적 학습을 통하여 어떻게 창조적인 적응과 정책선택이 이루어지면서 정책진화가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단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제 1단계: 불확실성과 정책문제의 성격
첫 단계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국가정책의 초기에 정책의 불확실성이 환경측면과 정책문제의 성격에서 존재하는데서 시작된다. 이 단계는 시화호 개발이 확정될 때 수질오염 가능성에 대한 예측력의 미비, 절대적 행정우위의 관행, 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개발지상주의와 막연한 긍정적 사고 등이 팽배할 때이다.
제 2단계: 쓰레기통 모형과 혼돈의 상태
이 단계는 국가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조정기제가 미리 마련됨이 없이, 정책문제가 지속됨에 따라 동의가능한 해결책이 부재하게 되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지고, 정책문제에 개입되는 이해관계자의 폭이 증가되고 참여자의 유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정책문제가 더욱 혼돈의 상태로 진입되는 단계로서 제 1단계의 연장선에서 혼돈이 진행되는 단계이다.
제 3단계: 마찰의 증대
이 단계는 정책오차(에러)가 발생하고 증대되는 단계로서, 시간이 감에 따라 시행기관의 사업완료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강화되고, 이에 따라 기관 간, 이해관계자간 상호설득의 필요성이 증가되는 단계이다. 곧 시화호 사례에서는 방조제 물막이 2차 공사가 끝나는 1994년 1월 이후에 수질오염의 악화로 비롯된 갈등과 시간압박에 따른 관계기관의 협의의 필요성이 증대된 시기에 해당된다.
제 4단계: 담론적 학습의 발생
이 단계는 정책수단과 기술적 측면에 대한 도구적 학습(instrumental learning)과 정책문제의 속성, 정책목표에 대한 태도, 정부개입의 적절성과 효과성에 대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이 발생하는 단계이다(May, 1990). 이와 같은 학습을 촉진하는 요인으로는 정책문제 해결에 대한 이해관계자간 경쟁, 타 기관․조직의 입장에 대한 이해, 정책 외부로부터의 도전적 환경 등이 작용한다. 한편 학습은 거버넌스 네트워크와 같은 일정한 제도적 틀 속에서 이해관계자간의 상호이해에 기반한 담론적 학습(discursive learning)을 통하여 진전된다.
제 5단계: 토론지향 학습기제의 작동에 따른 창조적 적응 발생
이 단계는 정책문제를 둘러싼 내․외부 환경변화와 담론적 학습을 통하여 창조적 적응 (creative adaptation)이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이해관계자간의 네트워크 구조속에서의 담론적 학습의 결과 정책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려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토론을 통한 학습이며, 그 결과는 그 간의 정책문제를 둘러싼 무질서가 감소되고, 불확실성이 현저하게 줄어들며, 이해관계자간에 동의가능한 창조적 대안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정책체제로서는 학습역량이 강화되게 되며, 이해당사자간에 신뢰가 그 만큼 증대되게 된다. 따라서 정책집행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시차에 따른 발생가능한 부대비용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정책갈등과 분쟁 해결, 사업의 성공적 집행을 위한 방향이 확보된다.
이와같이 위의 5단계의 CADL 모형에 따라서 아래의 시화호 정책개발사례의 과정은 기술되어 있다. 그러한 이 CADL 모형은 비단 이 시화호 및 시화지구 개발사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매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매우 복잡한 국가정책의 경우에 원용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일반화할 수 있는 모형으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문제인식을
Ⅲ. 창조적 적응 관점에서 시화호개발정책분석
시화호사례에 대한 창조적 적응의 관점에서 분석은 사업의 진행과정을 크게 다음과 같이 5단계로 나누어서 분석한다. 첫째는 객관적 불확실성의 주관적 합리화단계(75-84)이다. 둘째는 조직화된 무정부하의 의사결정과 혼돈단계(85-96.4)이다. 셋째는 마찰과 요동의 증폭단계(96.5-2000.8)이다. 넷째는 새로운 의사결정구조형성단계(2000.9-2004.12)이다.
1. 1단계: 객관적 불확실성의 주관적 합리화단계(75-84)
1) 전개과정
시화호에 방조제를 쌓아서 농지를 조성하고 관계용수를 확보하려한 것은 농림부로부터 시작되었다. 농림부는 이미 1975년부터 서남해안 간척농지개발을 위한 「적지(適地)조사」라는 기본조사를 하고 있었으며 국토개발연구원(1984. 5-1985. 5)의 해안매립 장기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타당성조사 연구에 의하면 전국 155개 간척 및 매립대상지 중 해안개발의 잠재력 평가에 의한 적지로 전국 48개 지구를 선정하였고(박보식, 2003: 78), 각 용도별로 우선순위가 높은 10개 지구를 대상지로 확정하였다. 특히, 시화지구는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공업용지의 수요가 많을 뿐만 아니라, 반월 및 인천 남동공단과 인접해 있어 사회 간접 자본의 추가부담이 적은 것이 선정 이유였으며, 해안매립지를 공업용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지조성뿐만 아니라 도로․용수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병행되어야 하고 수요에 맞추어 조성되어야 선투자의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한국수자원공사, 2005)고 보았다.
시화호는 간척사업의 적지로 선정되어 농림부(농업진흥공사)가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시화지구 기본조사를 실시하고 1984년 8월 건설부 및 관계부처와 농업목적 간척사업실시를 위한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협의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즈음 건설부는 국토확장사업추진방안에 대한 대통령에 보고를 하였고, 경제계에서도 시화호 개발방안에 대한 건의가 있었다. 이에 건설부는 농림부의 공유수면 매립요청을 유보한지 1개월 만인 1984년 12월 21일부터 사업을 추진하였다.
시화호 개발 추진과정에서 처음에는 농업진흥공사(현 한국농촌공사) 소속의 간척사업부에서 적지조사 등에 의해 시화호 유역 전체가 농지로 조성할 예정으로 사업이 진행 중에 있었다. 이후 건설부(산업기지개발공사, 현 한국수자원공사)가 공장부지 및 택지부지 개발을 요청함으로써 양 부처간, 산하기관 간 이견노출로 갈등이 야기되었다. 부처, 산하기관간의 갈등해소를 위해 청와대 경제수석이 개입하였고, 관계기관회의(건설부, 농수산부, 산업기지개발공사, 농업진흥공사, 국토개발연구원)에서 농업진흥공사가 추진해오던 시화담수화 개발을 건설부(산업기지개발공사)가 하도록 시행사를 변경하였고, 농지조성뿐만 아니라 공업단지 및 택지부지조성도 중요하게 다루어 추진하도록 정책목표는 다목적성을 띠게 되었다.
시화호 개발사업과정에서 초기 농지조성추진기의 주요 정책추진주체를 살펴보면 청와대, 경제기획원, 건설부, 농수산부가 정책결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환경청은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특히 초기(1982-1984)의 농지조성 정책과정에서는 농업진흥공사(현 한국농촌공사)의 영향력이 컸으며, 1985년 이후 건설부(산업기지개발공사, 현 한국수자원공사)는 정책협의과정에서 개발의 주체가 되고, 용도도 농지조성에서 택지 및 도시건설로 변형되어 주된 행위자로 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시화지구 개발 사업을 결정할 당시인 1980년대 초반에는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의 비판은 드물었다. 당시 언론기사들도 시화지구 개발의 청사진들에 대하여 보도하는 등 환경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개발지향적 측면을 강조하여 보도하는 경향이었다.
2) 객관적 불확실성의 주관적 합리화
시화호를 담수화하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한 매우 불확실성이 높은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사업추진과정에서 이러한 것은 정부의 주관적 합리성으로 대치되어 객관적 분석과 체계적 계획이 소홀히 다루어 진체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먼저 중앙부처의 독단과 강력한 대통령의 의지로 시화호개발의 정책이 결정되었던 점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3월 29일 중앙청 국무의원 식당에서 경제관계장관과 경제4단체 대표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중동에 나가 있는 대형건설장비들을 서해안 일대에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농경지, 축산단지, 공업단지 등을 일구는 방대한 국토확장사업을 전개할 방안을 관계부처와 업계가 마련해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박보식, 2003: 78)는 점은 이 사업의 필요성에 확신을 하고 있었던 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수질이 악화되기 쉬운 지형적 특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미흡하였다. 이러한 점은 다음과 같은 인터뷰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옛날에는, 시화호를 만들 당시에는 개발에 지나치게 치중했으니까 환경이 그만큼 간과됐죠. 물론 형식적인 평가는 했는데, 지금처럼 그렇게 환경을 신중하게 생각을 못했던 것이 그 당시의 문제...(농림부 농촌정책국 기반정비과 과장인터뷰, 2007.8.23)
당시 농림부가 적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는 사업기획과정에서 적어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타당성조사를 해야 하나 이런 것이 간과되었다. 농진공의 간척사업부 직원은 적지조사를 하는 상황에서 현재 도시 및 공장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없다고 했으나, 그 당시 산업기지개발공사는 1977년부터 주변에 반월공단과 안산 1단계 지구 부지 조성공사를 하고 있었다(한국수자원공사, 2005)는 사실로 볼 때 적지조사는 형식적 성격이 강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2단계: 조직화된 무정부하의 의사결정과 혼돈단계(85-96.4)
1) 전개과정
이 시기는 시화호의 개발을 놓고 관련기관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업성격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혼란이 커지는 때이다. 1984년 12월 27일부터 1986년 9월 26일까지 관계기관(건설부, 농수산부, 산업기지개발공사, 농업진흥공사, 국토개발연구원)은 시화지구 간척사업 추진관련 현안(일정, 추진주체, 비용부담)에 관한 공식회의를 개최하였다. 1975년부터 시화호 유역의 간석지를 농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간척농지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여 오던 것이 1985년 3월 건설부에서 시화지구 매립추진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와 관계기관회의를 거치면서 정책목표는 간척지를 통한 농지조성에서 도시개발, 공단건설을 포함한 복합용도의 토지개발로 변화되어 갔다(박보식, 2003: 79).
경제기획원은 사업추진에 관한 대통령 보고에서 경제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농업용 간척사업의 경제성 문제를 지적하고 공업용지로의 활용 필요성을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1986년 건설부와 농림수산부간의 사업추진 방안에 대한 협의를 통해 공단조성, 도시용 토지조성 및 외곽시설 공사는 산업기지개발공사(현 한국수자원 공사)가 담당하고, 농지조성은 농업진흥공사(현 한국농촌공사)가 담당하는 것으로 하였다. 농지조성과 담수호조성은 농림수산부장관이 매립면허 후 인수 관리하도록 합의하여 당시 농업진흥공사가 1987년 6월 10일 외곽시설공사를 착수하였다.
1989년 1월 24일, 건교부는 수도권 인구 및 산업시설 유입억제정책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토지이용계획을 준공업용지에서 주거용지로의 조정을 이유로 1989년 9월 30일 시화지구개발 기본계획을 변경고시(건설부 고시 제929호)하여 배후 주거용지 토지이용계획을 구체화하였고, 시화1단계 공사의 일부인 시화방조제가 1994년 1월에 1987년 6월에 착공된 지 6년 7개월 만에 완공되었다(박보식, 2003: 80). 1995년 2월부터 1996년 3월까지 시화호 안측의 사면보호 공사를 위해 수위를 낮추기 위해 배수갑문 운영이 중단되어 수질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2) 조직화된 무정부하의 의사결정과 혼돈
시화호의 수질이 심각하게 오염되기까지 이 당시의 사업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의사결정과정의 특징은 쓰레기통모형에서의 조직화된 무정부상태의 그것과 유사함을 보였다.
먼저, 문제의 흐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환경오염의 문제의 경우 초기에는 시화담수호 공사착수 이전에 실시되어야 할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문제가 현안이었다. 1986년 9월에는 시화지구 개발을 위한 반월 특수지역 개발구역 및 기본계획을 고시했으며 이 상황에서 당시의 「환경보전법」(1977.12.31 제정, 1990.8.1 6개 세부법률로 분화, 폐지)상 실시계획 승인 신청 전에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 건설부는 1987년 3월 환경영향평가를 협의 신청하였으나 반려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이의 객관성확보 문제가 쟁점이 되다가, 이후 사업추진 시 수질오염 악화에 대한 사전준비작업의 부족문제, 그리고 실제 수질오염의 문제 등이 크게 부상되었다.
참여자의 흐름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경제기획원, 건설부, 농수산부가 주요 정책결정기관이었고, 환경청은 1987년 4월 방조제공사 사업 시작 후 6월 공사가 착공된 후 넉 달이 지나서야 형식적으로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협의 요청을 받았다. 환경청(1990년 1월 발족, 1994년 12월 환경처로 개칭)이 당시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열악한 조직도 한 요인이 되었고, 1980년에야 환경청으로 발족한 상황에서 다른 부처의 개발논리에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건설부의 경우는 농지 적지조사 초기에는 정책관여를 못하다가 농지조성기 마무리 시기인 1984년부터 시화지구 개발이 한창 진행된 1987년까지 주된 정책결정자로서 기능하였다. 지방자치단체인 안산시와 산업기지개발공사는 하수처리시설 용량부족과 하수관로와 우수관로의 오접합 등으로 갈등관계가 형성되었으며, 산업기지개발공사는 환경영향평가를 공사착공 전에 실시하여야 했지만, 건설부 승인계획을 득한 후 공사 착공 후에 환경영향평가를 의뢰하여 환경청과 갈등관계가 형성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인 안산시는 이 건설로 인하여 지역발전의 좋은 계기로 삼아 초기에는 협조적이었으나, 하수종말처리장 건설지연 및 부실시공 등으로 시행사인 산업기지개발공사(1988년 현 한국수자원공사로 개칭)와 갈등이 일어났지만(박보식, 2003: 111) 지방자치단체가 중앙부처에 의하여 독단적으로 개발정책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또한 지역의 시민단체는 몇 단체가 있었으나 초기에 특별한 활동이 드물었지만 수질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시화호방조제 건설에 대하여 반대활동을 벌였다.
해결책의 흐름과 관련하여 환경영향평가의 객관성 및 절차적 오류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 건설부는 사업추진의 시간부족을 이유로 환경영향평가 내용 이행을 조건을 하여 1987년 6월 방조제 공사 승인계획을 고시하여 공사를 착공하는 형태의 해결책을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된 시화호의 담수화시 나타날 수 있는 수질오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이것은 방조제 물막이 완료(1994년 1월) 이후로 수질오염의 증가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영향평가 협의조건인 오․폐수 유입차단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방조제 공사를 시작했고,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의 산업폐수,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 등에서 나오는 생활하수, 축산폐수를 정화할 안산시의 생활하수처리시설과 반월 및 시화공단의 산업폐수처리시설, 그리고 시화처리장의 증설(1997년 완성)이 완료되기 전에 1994년 1월 시화호 물막이 공사를 완성했기 때문에 시화호의 수질오염을 예방할 수 없었다.
선택기회의 흐름은 참여구조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당시 참여구조에 영향을 준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실시를 들 수 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 시화호에 방조제를 쌓고 이를 농업용지, 용수, 도시개발 등을 위한 사업추진에서의 참여는 초기에 중앙정부중심의 참여가 이루어졌고,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및 시민단체의 참여는 저조하였다. 지자체 실시 이후 지방정부의 입김이 다소 강화되었고, 지역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사업반대도 증가하였다.
시화호 물막이공사의 완공에 따른 수질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각 정책행위자들은 다소 무질서한 혼돈의 상태에 직면하였다.
3. 3단계: 마찰과 요동의 증폭단계(96.5-2000.8):
1) 전개과정
시화호 방조제 물막이 공사 후 수질이 악화되면서 1996년 4월 25일에 시화호 수질오염문제가 SBS TV 보도를 통하여 언론에 노출되어 환경문제로 이슈화되었다. 급기야 오염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염된 담수호 물을 외해로 방류함으로써 수자원공사와 주민․환경시민단체간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다.
시화호의 방류장면이 보도되면서 시화호는 국내에 사례가 없었던 수질오염의 대명사가 되었다. 1996년 4월 29일 환경부 주관으로 수질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는 후 1996년 5월 2일에 환경부 주관하에 건교부, 농림부, 수공, 농진공,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등이 참여한 관계기관 대책회의 개최를 거쳐서 「시화호 수질개선대책(안)」이 1996년 5월 15일에 환경부에 제출되었다.
시화호수질대책(안)이 환경부에 제출된 후 약 2개월간의 기간 동안 수십차례에 걸친 현장답사, 자문회의, 실증실험 등을 거쳐 1996년 7월 5일 언론에 공식적으로 「시화호 수질개선대책」을 발표하였다. 발표된 시화호 수질개선대책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시화호 유입 오염원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시화호 유역으로 들어오는 오염원을 차단하는 방안이며, 둘째, 이미 악화된 수질의 개선을 위한 호수 내 방안이었다. 이를 위하여 장․단기로 나누어서 한국수자원공사와 시화호유역 관할 지자체가 총 4,502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이었다.
이즈음 시화호에서는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였고, 1996년 10월에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김종배 의원은 농어촌공사와 수자원공사가 지역주민 모르게 시화호 배수갑문을 조작하여 11억 톤의 오염수를 방류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감사원에서는 시화담수호 수질개선사업 감사결과를 발표(1996.11.3)하였고 그 결과 수자원공사 본부장을 비롯하여 수십 명의 공직자가 문책을 당하기도 하는 등 시화호를 둘러싼 갈등과 마찰은 심화되어갔다.
특히 안산과 시흥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화호살리기와 관련한 워크샵과 심포지엄이 활발하게 열렸다. 1998년 1월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시화담수호사업을 3대 부실사업으로 규정하고 전면조사에 착수하기도 하였다.
한편, 수질개선측면에서 시도된 해수의 유입으로 담수호 역할이 어렵게 되자 농림부는 1998년 11월에 시화호 담수화(농업용수)를 사실상 포기하고 12월에는 시화호 물을 농업용수로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환경부에 공식으로 전달하였다. 1999년 1월 7일 농어촌진흥공사는 시화호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탄도담수호 및 우정담수호를 이용하여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시화호의 용수 이용계획이 철회됨으로써, 시화지구 공유수면 매립면허 고시를 허가받아 농지 조성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999년 11월 환경부는 시화호 수질개선대책과 관련하여 회의를 개최하여 시화호의 담수화 또는 해수화에 관한 부분은 향후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이 가능하면 담수화를 추진하고, 불가능할 경우 계속 해수를 유통시키되,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이용계획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 후 수자원공사는 2000년 5월~7월 동안 관련부처(건교부, 농림부, 해양수산부)로부터 시화호에 대한 용수이용계획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2) 마찰과 요동의 증폭
이 당시 시화호 담수호사업을 둘러싸고 전개된 주요 정책이해당사자간 관계구조는 다음의 그림과 같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간의 상호작용의 모습이었다. 이들 간의 나타난 핵심적인 마찰적 요소를 요약하면, 먼저 시화호의 오염과 이에 대한 책임규명을 둘러싸고 마찰이 고조되었다. 시화호의 오염심화에 따라 언론, 환경단체, 국회 등은 시화지구개발사업의 졸속 시행과 시화호 오염원인 제공자에 대한 책임규명에 관하여 연일 보도하였다. 그러나 수질개선대책 수립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가 열리고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자 모두들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시행에 앞서 원인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책의 이행을 위한 예산의 뒷받침이 시급한 과제였지만 국고의 예산지원은 한계가 있었고, 지자체는 계속해서 피해자임을 강조하면 기본적인 대책만을 제시하고 예산부족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한국수자원공사, 2005). 아래의 회의내용은 당시 책임문제에 대한 논란을 잘 보여준다.
<그림> 요동증폭시기의 정책이해당사자 상호작용의 관계
○李允洙委員
안되는 것을 그렇게 처음서부터 만들었다는 것은 처음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겁니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지금와 가지고 이렇게 엄청난 일들이 발생되도록 한 것은 수공에서 책임을 져야지요. 그리고 요즘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위원회에 와서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그러고 사과를 하는데 실제로 밖에서 신문이나 이런 것을 보면 농진공하고 서로 떠밀고 있다고 농진공 조사장이 내 방에 와가지고 분명히 자기네들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에요.
수공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처음에 시화호 만들 때 두 군데서 같이 하지 않았습니까?
○韓國水資源公私社長
공단 조성은 저희 수자원공사가 담당하고 있고 공단관리는 서부지역관리공단에서 맡고 있습니다. 하수 및 폐수방류 수질관리는 환경부가 맡고 있습니다. 하수처리책임은 안산시, 화성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방조제와 배수갑문관리는 농어촌진흥공사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
○李允洙委員
본위원의 얘기를 잘 들으세요.
지금 이 관리체제가 개․폐쇄는 농진공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까지 된 것은 수자원공사에서 요구를 해야 농진공에서 결정을 해서 수문을 열든지 닫든지 했다 그 말이에요. 그렇게 해 왔지요. 왜 처음에는 분명히 관리체계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왜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 왔느냐 그 말이에요. 실제로 그러니까 수공이 이 문 열고 닫는 것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 말이에요?
○韓國水資源公私社長
제가 잠깐 설명 올리겠습니다.
5월에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농어촌진흥공사가 현장사무소에서 판단해서 열고 닫고 했습니다. 문제가 된 다음에 시화호 침수가 염려되어서 저희가 문제제기를 하니까 그때부터는 문을 열 책임을 미루어왔기 때문에 그때부터 저희가 공문도 보내주고 사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저희가 그 일을 수행한 것입니다.
○李允洙委員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시화호 문제를 지금 수공에서 전부 안고 있다 그런 얘기에요?
간단히 물읍시다. 이 시화호의 책임이 어디 있다고 봅니까? 농진공에 있습니까? 수자원공사에 있습니까?(제180회 국회 건설교통상임위원회회의록, 1996.7.23)
다음으로 시화호 해수유통에 따른 외해가 오염되는 부작용이 심각하였고 이에 따른 민원과 소송이 빈발하였다. 배수갑문 개방과 관련하여 민원과 고발은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1996년 11월 18일에는 안산시 대부도에 거주주민 일부가 무단방류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 지방법원에 제출하였으나 법원에서는 “여러 사정에 비추어 시화호 방류 전면금지 필요성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1997년 10월 17일 기각을 결정하였다. 이후 1997년 1월에 시화호 방류로 인한 피해보상 요구가 영흥, 선재지역, 인천남항어선협우회, 소래어촌계, 인천연안유자망협회, 오이도어촌계와 사동어촌계 어선 어업자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하였다.
셋째, 정부와 지역시민단체 간의 불신의 파도도 요동쳤다. 언론을 통해 시화호 오염문제에 대한 인식은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에 확산되었다.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은 지역개발정책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를 지적하면서 오염의 심화에 따른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높아졌다. 환경단체,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역시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오염문제는 정치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안산시, 시흥시, 그리고 화성시 등 지역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지역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출현하였다(최승범 외, 2004: 72).
4. 4단계: 공동협의모색과 뉴패러다임 의사결정구조형성단계
(2000.9-2004.12)
1) 전개과정
마찰과 요동이 증폭되면서 비로소 공동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하고 그 결과 2004년 1월에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같은 새로운 의사결정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2000년 9월 19일 건교부에서는 시화호 및 주변 간석지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활용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농림부․산업자원부․환경부․해양수산부․문화재청․경기도 담당국장과 시흥시․안산시․화성시 부시장 그리고 한국수자원공사․농업기반공사의 담당 본부장들을 위원으로 한 시화지구 정책협의회의 구성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첫 단추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부는 2001년 2월에 시화호를 해수호로 한다고 확정 발표하였다. 이것은 그 동안 시화호의 담수호에 따른 수질오염을 비판한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이어서 ‘시화지구정책협의회’는 2001년 3월 14일 시화지구 종합계획 수립과 관련된 회의를 통하여 시화지구 종합계획을 국토연구원에서 총괄하되 환경정책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해양연구원․해양수산개발원․경기개발연구원 등 6개 정부출연기관에서 공동으로 수행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리고 2001년 7월에는 6개 정부산하 연구기관(국토연구원, 해양연구원, 해양수산개발연구원,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경기개발연구원)을 중심으로 시화지구 장기종합계획 연구용역에 착수하였으나 각 연구기관의 견해차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최승범 외, 2004). 이에 따라 2002년 12월 25일 종료예정이었던 종합계획수립 연구용역은 중단되는 곡절을 겪으며 2003년 12월에 최종안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발표된 ‘시화지구 장기종합계획(안)’은 시민단체로부터 ‘시화호를 두 번 죽이는 개발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시화호시민연대회의는 정부에 시화지구 종합개발계획(안)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였다.
당시 건교부 서종대 단장은 지역과 시민사회에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회’구성 방안을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제안하게 됨으로써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시화지속협의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하게 된다.
시화지속협의회는 건교부, 환경부, 산자부, 해수부 등 정부부처,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 등 지자체와 지역주민, 시민․환경단체 및 전문가 등 이 참여하여 시화지역이 당면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하였다. 협의회는 전체회의와 분과회의로 운영되는 구조를 가졌고 분과회의는 개발계획분과, 대기분과, 수질생태분과로 구성하였고 분과위원장은 환경NGO와 민간에서 맡았고 한국수자원공사가 간사기관을 맡았다.
모든 회의결과는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였으며 회의참관은 모두에게 개방되었고, 협의회에서의 주요 결정은 위원의 과반수의결이 아닌 최대한 합의를 원칙으로 하였다. 초기의 시화지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전체회의를 구성한 주요 행위자 현황은 다음의 표와 같다.
자료: 시화지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2004).
2) 뉴패러다임의 의사결정구조형성
뉴패러다임의 의사결정구조를 형성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먼저 시화호 담수화시도에 따른 수질오염문제, 대기오염문제, 그리고 개발을 둘러싼 이견이 심각해지고, 이에 따라 다양한 정책이해당사자들 간 마찰이 커지면서 문제해결공동체에서 협의와 상호이해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당사자 간의 의견과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도로서 2000년 9월에 범정부적으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시화지구정책협의회가 구성되기도 하였다. 건교부를 중심으로 운영한 시화지구 정책협의회는 13개 관계기관(건교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농림부, 산자부, 농업기반공사, 문화재청,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수공, 농업기반공사)이 참여했지만 여기에 결정적으로 시민단체의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존 개발계획(안)을 수용하되 연구결과에 따라 보완하도록 한다는 결정을 하기도 하였지만 국가기관과 지자체 중심으로 구성된 이 기구의 작동은 관계기관 간 현안에 대한 이견으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2003년 4월까지 정책협의회의 개최는 단지 1회에 불과하였다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시화호를 해수호로 결정하면서 해양수산부는 2002년 12월 12일에 시화호 수질개선 및 환경보전을 위하여 시화호관리위원회를 개최하여 친환경적 시화호 보전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시화호관리위원회에서는 전문가자문단을 구성하기도 하였는데, 수질, 갯벌생태 등 분야별 자문단에 시민사회단체가 상당수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문제해결을 위한 이러한 노력들은 상호간 의견조정의 기회를 넓혀주었고 문제해결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데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사결정구조를 형성한 데에는 정부의 유연한 대응도 기여하였다. 정부부처 간의 참여만으로는 시화호 및 시화지구의 개발과 보존의 문제해결에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동등한 입장과 동등한 수준에서의 참여를 원하는 시화호시민연대회의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들을 제도적 틀로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시민사회단체의 제고된 역량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지역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범연합체적 성격을 띤 시화호시민연대회의 는 시화호의 개발과 보존과 관련한 지역현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으며 워크샵, 시민토론회, 전문가 토론회 등 각종 공청회도 적극적으로 개최하였다. 연대회의는 지역주민과 개별 시민단체의 의견을 결집해 나아갔으며, 친환경적인 시화호 시민안을 작성해서 이를 정부에 촉구하는 등 대안중심의 활동을 벌였다. 지역시민단체는 친환경적인 시화호 개발과 보존을 위한 연대기구를 조직화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대안제시 활동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자신들의 주장을 정부에 제시함으로써 급기야는 동등수준의 참여지분을 보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사결정기구 구성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2004년 1월 구성된 시화지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이전 시화호 논의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동안의 대응이 주로 정부와의 갈등과 투쟁중심의 외부적 대응 이였다면, 지속위의 구성 이후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구체적 정책적 대결과 협의 위주의 내부적 대응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지속위 구성 이후 갈등과 대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와 입장의 차이를 줄이고, 이해와 신뢰의 폭을 넓히고, 공동의 합의를 모색하는 기조로 변화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Ⅳ. 결론
지금까지 정책진화에 초점을 맞추어 시화호담수화사업에서 나타난 정책변화과정을 객관적 불확실성의 합리화단계, 조직화된 무정부하의 의사결정과 혼돈단계, 마찰과 요동의 증폭단계, 공동협의모색과 뉴패러다임 의사결정구조형성단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시화호 개발사업은 초기에 단순하게 접근하여 합리적 계획과 체계적인 분석이 미흡한 상태에서 추진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지만, 단기적인 실패를 거듭하는 진통을 겪은 후 정책이해당사자들은 문제를 공동으로 검토하고 논의하여 결정할 수 있는, 기존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사결정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한 시사점으로는 먼저, 공공사업을 추진할 때 초기 치밀한 예측과 분석에 근거한 합리적 계획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초기 계획을 수립하는 기획과정에서 관련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정책환경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타당한 계획을 수립하여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초기 계획이 부실하면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과 같아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치르게 되고 단기적인 정책실패를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공공사업의 규모가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부정적인 파급효과 역시 커진다는 점에서 대규모의 공공사업의 경우 특히 초기 기획과정에서 계획을 잘 수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사업이 다목적의 성격을 띠는 경우 정책추진에서 정책조정의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기존의 정책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목적성을 띤 정책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정책은 동태적 과정 속에서 항해해 나갈 수밖에 없는데, 갈등할 수 있는 정책이해당사자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조정기능이 매우 중요해 진다는 점이다. 이 경우 조정은 권위적인 조정보다는 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조정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정책개선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셋째, 단기적으로 실패를 거듭한 정책도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개방성을 갖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여 공동으로 문제해결을 추구할 때 장기적으로는 정책개선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용인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것이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적 열린 토론이 가능한 협의기구를 내재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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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apa21.or.kr/data/data_download.php?did=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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