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도가 원래 농업이 어업보다 발달한 곳이었어. 옛날에60,70,80년대 논농사가 많았어요. 인구도 많았지만 여기서 농사를 1년간 지으면 3년을 먹는다고 했어. 농사가 많아 부촌이었지요. 땅도 비옥하고 넓고. 인구대비 평지가 많아 땅이 넓었지. 조개캐고 겨울에는 굴 찾고, 여름에는 바지락 조개 낙지 등 어업도 하고.
예전부터 부지런한 사람은 대부에서 잘 산다고 했어요. 포도농사 진것은 얼마 안되었어요. 90년도부터 많이 시작했죠. 방조제 건설하고 나서 포도가 많아지고 논이 많이 메꾸어지고 포도가 많아진거죠. 논농사보다 포도농사가 수입이 나으니 그걸로 바뀐거죠.
팬션이 지어진 것은 얼마 안되었어요. 7-8년 정도 전부터? 88년도에 선감도하고 화성하고 연결이 되면서, 90년도 되면서 안산쪽으로 연육되면서 외부인들이 많이 오게 된거죠.
여기가 옛날에는 생활권이 인천이었어요. 여객선이 하루에 한번씩 인천에서 대부도를 왔다갔다 한거죠. 오히려 안산 쪽은 전혀 몰랐죠. 안산은 생활권이 아니었죠. 화성도 별로 아니었고. 인천이 가까운건 아닌데 교통수단때문에. 화성 안산은 여객항이 없었죠.
그당시에 나간 사람든 별로 다시 들어오지 않아요. 은퇴하고 고향이라고 온사람은 몇몇 있지만.....외지분들이 땅사서 사는 거고-옛날에는 투기쪽으로 땅을 많이 사둔거죠.
젊은 사람들은 안오고 퇴직하고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 외지에서 와서 집짓고 사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뭐 할게 있나 공장이 있나 회사가 있나. 농사 짓고 밥먹어야 하는데.
실제로 농사, 상인들이 많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별로안되요. 어패류가 많이 없어졌어. 물의흐름을 막다보니 벌이 들어와서 어패류가 살지 못하지. 그나마 낙지류가 뻘이 생겨서 좀 잡히는 편이고. 김 종류 좀 있고.
종교: 성황당은 옛날 것이고 지금은 깨여서 미신쪽은 안믿어. 옛날에 여기가 가을철이면 무속인들이 돌아가며 집집마다 경을 했어. 지금은 다 없어지고 개신교도 많아지고 교회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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