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 월요일

영전마을_2~30년 전 서울에서 이주해 들어 온 인테리 할머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보리수열매) 따 드세요. 농약 안 친 무공해야. 어디서 오셨어? 이거 오디도 드셔. 무공해야 농약을 안 쳐서. 이거 일본 사람들이 뽕나무를 심게 했다고. 우리 국민학교 다닐 적에. 이걸로 활을 만들었지. 일본 애들이 양잠을 장려했다고. 보리밭에 드문드문 심어노며는, 작물에 피해 없이. 커다랗게 밭에. 해방 되면서 전부 다 캐다 버렸어. 농작물을 심어야 되니까. 밭 가운데 이런 게 있으면 아주 불편하지. 왜놈들이 아주 의무적으로 심게 해가지고 사람들이 싫어했거든. 우리 어릴 때 고생 많이 했어. 농사 지면 집집마다 공출이라 해서 농토에 따라서 할당이 나와. 백 섬 나오면 열 섬을 공출을 해. 정당한 가격을 안 쳐 주고 입막음으로 조금씩밖에 안 쳐줘. 그러니까 농민들이 그걸 감춰놓고 그랬다가 나중에 조사 나오면 들키고. 그러면 끌려가고 그러지. 그 땐 주재소라 그랬어. 경찰관 주재소. 소장이 일본 사람이고 순경은 한국 사람인데, 대개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 밑에서 순경으로 있는 사람들이 질이 그렇게 나빴어. 우리들이 저자거리에 놀러가고 그러며는 길거리에다가 소나무 박은 그런 게 있어 거기다가 손목을 이렇게 말이지 엮어가지고는 말이지 그 일본 사람들 검도하는 그걸로다가 막 패고 그랬다 말이지. 한국 사람들이 그 짓을 했어. 자기 동포를 말이지. 그렇게 막 때렸다고. 그러니 한국 사람들이 기질이 말이지. 어떤 정권이 되었든지 거기다가 그렇게 충성을 해. 그 때는 그렇게 충성을 하면 안 되거든. 우리 어렸을 적에 어린 눈에 보기에도 참 불쌍했어.  수갑 채워가지고 그렇게 해가지고 때리고 말이야. 요즘 그러면 아마 동네 사람들 마을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서 야단하고 그랬을 거야. 그냥 봐서 넘기지 않어. 그 때는 일본 놈들 걔들 식민지였으니까.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전부 일본말을 배웠거든. 학교 들어가며는 일본말 하는 애들이 몇 있어. 그러면 공부를 안 시키고 조선말 하는 애들을 끌어내는 거야. 근데 한국 애덜이 끌어내. 그러면 이 새끼 하면서 욕을 할 거 아냐. 그러믄 욕 했다고 말이지. 조선말 했다고 끌어낸다고. 그러면 선생이 말이지 뒤에다가 까만 리본을 달아줘. 까만 리본 이만한 거. 그거이 달아가지고 있으면 웃기지. 달려가면 그거이 털렁털렁거리면 웃기잖아. 그러믄 끄내가지고 온 놈은 빨간 리본을 달아줘. 고렇게 머리를 써가지고 일본 국민을 만들라고 아주 정책적으로. 그리고 일본 선생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며는 군대 퇴물들. 하사관 출신, 거기서 병 출신들도 있어. 상등병. 병장. 고쬬. 고쬬면 지금 하사. 그런데 고쬬만 되도 그 때는 교감 했어 일본 사람들이. 교장은 상사. 준위. 그 사람들이 교장 하고. 근데 일본 사람들은 많진 않고 한 학교에서 4~5. 전부 한국 사람이거든 한국 선생들. 사범학교 출신들. 정책적으로 한 학년을 일학년부터 일본 사람을 담임을 시켜 계속. 전부 일본 국민을 맨들라고. 그 학년은 졸업할 때까지 한국 선생이 담임을 안 해. 담임할 사람이 없으면 교장까지 와서 담임을 해. 그렇게 머리를 써서 그 때 말로 황국신민. 천황의 신하. 황국신민화를 하느라고. 초등학교 때니까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하고. 그 때 왠만큼 민족 의식이 있는 학부형들은 집에 가면 학생들한테 굉장히 훈계를 했다고. 그런 애들은 조금 어렴풋이 알았어. 그렇지 못하고 무식하게 자란 놈들은 무조건 하이, 하이. . . 소리가. 일본 사람들이 뭐라 하면 하이. 하이.. 거 참 불쌍했지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 때는 우리가 초등학교만 나와도 지방에서는 인테리였어. 인테리.   ….. 웃기는 놈들 많았어. 걸을 때 홋쩌도레하면서 이렇게이렇게 걷는 게 있거든. 근데 그거를 애들이 장난으로 홋쩌도레 하며는 애들이 다들 놀래서 다리를 이렇게이렇게. 그러니 그걸 또 선생한테 일렀다고. 그래서 얻어터지고 장난 한 놈들. 그렇게 웃긴 놈들이 많아. 아무 것도 아닌 놈이 잘난척하고 조금 있으면 이장이나 해먹을라  그러고. 시골 와서 보니까 또 웃긴 놈들 많아. 그러다보면 옛날 생각이 나. 옛날 그 홋쩌도레 하면서. 난 여든 살 넘었어. 33년생. 근데 내가 병원에 다녀. 신경과. 치매 전 단계라. 치매는 지난 거는 아주 기억을 잘 해. 그리고 현재 있는거, 요 근래에 있던 거는 아주 까맣게 잊어먹어. 치매 전 단계는. 젊을 적에 한 일 무지하게 많지. 이거저거. 내가 저기 저 6.25 직후 다 끌어갔자너. 중학교 애들도 다 끌어가고. 중학교가 그 땐 6년제였어. 중학교 고학년 애들을 끌어가고. 인민군에 간부 요원으로 막 끌어간다고. 실제로는 끌어가다가 소총수로 전부 써먹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은 간부 요원 시켜준대니 거기를 들어가서, 별 놈 다 있었어 그 때도. 근데 그 때 이제 육군 가면 큰일 나니까. 나는 학교 다니다 말고 공군에 입대했어. 상사까지 17. 항공기 정비사로 17년을 했어. 인텔리는 무슨 기술자지. 그 때는 엔지니어라 안 했어. 메카닉이라 했어. 여기 포도, 사과 익을 때 와서 이거이거 먹어. 우리 안사람이 좀 아퍼.


할머니: 어디서 오셨어? 아아.. 알어, 거기. 뭐 하러? 아아.. 아이고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안 왔지 여기. 포도가 먹어보면 대부 포도가 젤로 맛있었거든. 그래 포도 따 먹고 살라고 여기 왔는데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안 왔지 여기. 이거 다 따 드세요. 이거 다 무농약이에요. 저기? (산을 깎는 공사 중인 풍경에 대한 질문에) 저기는 저거 뭐 복지관 들어온다고 하던데. 저거 다 퍼다가 시화호 거기 메꾸는 데 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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